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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대화 (하나님의교회 영혼문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물었다.

" 하나님, 1000억 원을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

" 단 1푼에 불과하지. "

" 하나님, 그럼 1000년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

" 단 1초에 불과하지. "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 하나님, 그럼 제 부탁 좀 들어주십시오. "

" 무엇인지 말해보아라. "

" 제게 1푼만 주십시오. "

하나님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

" 1초만 기다리거라. "

 

 

이사야 51: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이 땅의 삶은 하루살이 같은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삶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5차원의 세계....

 

 

고린도전서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사람의 생각으로는 생각할수 없는 영원한 세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땅의 삶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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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영혼문제 = 죽음과 잠

 

죽음과 잠

우리는 흔히 죽음을 잠에 비유한다. 어느 묘비명에는 '아무개가 여기에 잠들다'와 같은 글귀가 쓰여 있기도 하고, 사람의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영원히 잠들다'라는 뜻의 한장 '영면(永眠)'을 사용하기도 한다.

2천 년 전 예수님 역시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사로의 죽음을 알리실 때 그가 죽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가 '잠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한복음11:11~14)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 이유


그렇다면 오랜 옛날부터 사람의 의식 속에서 죽음과 잠이 동일한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왜일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잠들었다고 말씀하셨을까.

죽음과 잠은 일견 비슷한 점이 많다.  죽은 사람과 잠 든 사람.  둘 다 눈을 감고 있으며, 의식도 없다.  깨어 있을 때처럼 자유롭게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러나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잠에 비유한 것은 아니다.


죽음과 잠의 유사성은 역설적이게도 이 둘의 차이점 속에서 발견된다.  죽음과 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생명의 존재여부다.  죽은 사람은 의식도 없고 말도 없다. 이는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든 사람은 동일하게 의식도 없고 말도 없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잠으로 표현하신 이유는 비록 그의 육신은 죽었지만 그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육신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살아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혼이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기서 19:26) 

욥은 자신의 가죽, 즉 육체가 죽은 이후에 그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증거했다.  비록 육체는 죽어서 썩었지만 그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  그래서 죽음이란, 한 사람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인 것이다 (전도서 12:7) 


두 개의 삶 


죽음은 곧 잠이다.  즉 잠이 든 것과 같이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것이 곧 부활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죽음이 잠으로 표현된 것사망과 부활의 중간에 생명이 여전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죽음 후에도 우리의 영혼은 존재한다.  이는 곧 우리에게 육의 삶뿐 아니라 영혼의 삶, 즉 부활 이후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삶이 있음을 의미한다.  눈 앞에 보이는 3차원의 세계를 살아가기도 바쁜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혼의 삶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영혼이 바로 우리의 본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 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1~22)

죽었던 아이의 영혼이 그 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아이가 살아났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말을하거나 움직일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은 바로 영혼에 달려있는 것이다.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우리 육신의 삶과 영원히 지속되는 영혼의 삶.     이 두 가지의 삶 중,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일까.   우리는 어떤 삶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   순간의 삶을 위해 영원을 포기하는 사람과 영원의 삶을 위해 순간을 희생하는 사람,  과연 누가 더 현명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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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

 

나는 누기인가? 영혼문제 (안상홍님)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한번쯤은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확한 답을 알려주는 곳 또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으 삶을 살아가면서도 곤고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한 답을 알려주는 곳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교회 이다.   하나님의교회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수 천 년간 인류 역사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는’ 모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0년을 살든지 100년을 살든지 결국에 가서는 죽음으로 끝을 맺고 만다.
왜, 어떤 이유에서 인류는 이 허무하고도 공허한 삶을 경험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 우리는 ···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번역 에베소서 1:4~7)


세상 창조 이전 즉 지구가 생기지도 않았을 때에 택함 받은 ‘우리’는 누구일까. 다름 아닌 에베소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과 그의 서신을 받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이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 땅에 사는 인생들이 지구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죄인’의 처지에 있다고 말한다. 과연 전 세상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전 세상의 나는 누구이고, 현재의 나는 누구이며, 죽은 후에 살아남아 영원한 집에 돌아갈 미래의 나는 누구일까(전도서 12:5~7).



사람에 대한 이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흙)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 (현대인의성경 창세기 2:7)


사람에 대한 이해는, 사람이 어떻게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산 존재.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실 때 시작되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생기를 가리켜 ‘신(神)’, ‘영혼’이라고 말한다(전도서 12:7, 에스겔 37:14, 누가복음 12:20). 즉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혼이 몸에서 나가면 사람이 죽고, 영혼이 도로 몸에 들어오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을 기록하고 있다. 바로 사르밧 땅에 있는 한 과부의 아들이다. 그는 갑자기 위중한 병에 걸려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당시 과부의 집에서 신세를 지던 선지자 엘리야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안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엘리야는 ···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 아이의 영혼이 돌아오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 주셨으므로 그 아이의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그가 되살아났다 (새번역 열왕기상 17:22~23)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영혼’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를 깨달았던 베드로는 사람의 육신을 가리켜 영혼이 임시 거하는 장막집이라고 표현했고, 사도 바울은 사람이 죽게 되면 장막집에서 벗어난 영혼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가게 된다고 말했다(베드로후서 1:13~15, 고린도후서 5:1~9).


이처럼 사람의 본질이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지금도 육신의 만족을 누리는 것만을 인생의 목표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고하고 탄식하고 좌절한다. 그러다 결국 대면하는 죽음 앞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논한다.


이제 인생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창조 전부터 존재했던 진짜 나의 존재. 죽음 후에도 살아남는 진짜 나의 존재. 내 영혼이 어째서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살고 있으며, 사는 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인류의 전 생애


인생에 대한 해답은, 사람의 영혼이 이 땅에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를 아는 데부터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내가 땅(지구)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가 많음이니라 (욥기 38:1~21)


욥(Job)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그는 부자로 태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다. 쌓아놓은 재산을 잃고, 질병으로 고생하고, 심지어 큰 재앙으로 자녀들까지 잃는다. 그를 위로하러 온 세 친구들과 다투기도 한다(욥기 1:13~22, 2:7~10, 4:1~26:14). 사는 날 동안 수고와 탄식, 미움과 적개심,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인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기 전에 욥이 어디엔가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때 그는 하나님 곁에서 기뻐하며 노래까지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의 곁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도대체 지구 창조 이전에 존재하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욥을 포함한 인류가 인생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전 신령의 시절이다. 우리는 천사세계에서 이 땅에 내려온 존재들인 것이다(누가복음 15:4~7, 19:10).


욥, 솔로몬, 예례미야, 요한,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인류는 왜 천사세계에서 이 땅에 내어보냄을 입은 것일까(예레미야 1:5, 요한복음 1:6, 9:2)?



이 땅에 태어난 이유


앞서 사도 바울은 인생을 가리켜 ‘하나님의 피’로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이라고 얘기했다. 전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여호와께서 ··· ‘너는 두로 왕을 위해 슬퍼하며 나 주 여호와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 네가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 있으면서 갖가지 보석으로 단장하였으니 곧 홍옥, 황옥, 금강석 ··· 이 모든 것은 ···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너에게 주어진 것이다. 내가 너를 택하여 지키는 그룹 천사로 세웠으므로 ··· 네가 창조되던 날부터 네 행위가 완벽하더니 마침내 네 악이 드러났구나. ··· 횡포를 부리며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지키는 너 그룹(천사)아,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 너를 땅(Earth, 지구)에 던져 ··· (현대인의성경 에스겔 28:11~17)


기원전 11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두로(현재 지명 ‘수르’).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해안 도시 중 하나다. 솔로몬과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던 두로 왕 히람은 이스라엘 성전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자를 지원했던 실존 인물이다(여호수아 19:29, 열왕기상 5:1~6).


성경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을 가리켜, 그의 근본이 하늘의 그룹 천사라고 말한다. 그가 범죄하여 이 땅(지구)에 인생으로 태어나기 전 그의 본래의 성격과 지위가 어떠했는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곧 범죄한 천사와 인간은 오묘하고도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무수한 천사들이 범죄하여 이 땅에 인생으로 태어난 존재 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내 영혼이 울면서 세상에 태어나 삶을 시작하고 각종 인간관계의 문제, 종교적 문제, 경제적 문제, 도덕적 문제, 전염병의 위험 등에 얽매여 수고로운 여정을 살다 허무한 죽음을 당하는 근원적 원인, 그것은 하늘에서 지은 죄 때문이다. 성경은 그 죄의 값을 사망이라고 기록한다. 인류가 하늘 재판정에서 선고받은 죄의 형량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지위 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생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로마서 6:23, 히브리서 9:27).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범죄한 천사들에게 ‘인생’이라는 시간을 주셨을까.
인생들은 도대체 이 시간에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만 하는가.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새번역 요한1서 1:8~10)


우리는 ···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번역 에베소서 1:7)


인생(人生). 이는 하늘의 범죄한 천사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시간이다. 천사세계에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기회의 시간인 것이다. 이를 깨달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사는 동안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일전에 예수님께서도 가버나움 회당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불쾌히 여겼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던 사람들도 이 말에 걸려 넘어졌다.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가?”라며 웅성댔고 비아냥거렸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더욱 힘주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장 53절)


무엇이 그리도 간절하고 처절하셨던 것일까. 도대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일까.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 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22장8~20절)
  


이날은 성력 1월 14일 저녁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유월절 새 언약을 지킬 객실을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드디어 이날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공개하셨다.


떡과 포도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십자가에서 찢기실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알려주셨다. 당신의 살이 채찍에 찢기고 온 피를 쏟아야 하는 죽음을 이미 예견하신 것이다. 몸서리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엇이 그리 애타셨는지, 유월절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신 예수님. 그리고 이날 유언을 남기셨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있는 법.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께서 이날 하신 유언 곧 약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한다(히브리서 9:15~17).


도대체 새 언약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하신 약속은 무엇일까.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그토록 새 언약을 외치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류에게 ‘죄 사함’의 약속을 주시기 위함이었다(마태복음 26:17~28). 인류가 전 세상에서 지은 ‘사망죄’를 끊어내시고 다시 본래의 천사세계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요한복음 17:5~10).


이제, 바쁜 세상살이에 묻혀서 잊고 있던 진짜 나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내가 누구인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지, 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내려오셨는지. 왜 그토록 애달프게 새 언약을 외치셨는가를 말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죄 사함’이라는 답을 찾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인생의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이자, 인생의 해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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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