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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령시대에 구원자 성령과 신부를 믿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늘 아버지,  신부는 하늘 어머니 이십니다.

 

하늘 어머니가 계시다고 이야기를 하면 천주교를 다니는 사람은 마리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이지 결단코 하늘 어머니가 될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큐앤톡 영상을 보실께요~~^^

 

 

 

:
Posted by 꿀~~단지

딱 10일 되었네요.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목련이 꽃봉우리를 틔우고 있는덜 봤는데 . . . .

벌써 이렇게 목련 꽃이 활짝 피었어요~^^


꽃송이도 큼직하고....
멀리서 바도 너무 예쁜데, 가까이서 봤더니 꽃잎들이 군데군데 띁겨 있네요.
알고보니 새로 피는 꽃들마다 새들이 와서 띁는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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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꿀~~단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안상홍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안상홍님이 하나님인지 알지 못하고 부인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상홍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두번째 오신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2천 년 전 초림 예수님도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사람들은 영접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왜 두번째 오실때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사람의 모습으로 두번째 오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안상홍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성령시대 두 번째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 이십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이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폐지된 후 유월절을 회복해주신 분이 안상홍님 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에덴의 선악과 - 죽음, 그 비극의 시작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모두가 죽음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에게는 생과 사는 공평하게 주어진 숙명이자 난해한 숙제 입니다.   왜 인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죽음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인류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은은 에덴동산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모든것을 다리스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습니다.   단, 선악과마나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리셨죠.    그 이유는 선악과는 죽음을 불러오는 저주의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8~17)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먹어도 죽지 않으리라"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 먹고 말았습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당연한 결과지만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여화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즉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생명나무 열매, 생명과을 먹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다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가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명나무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천사들과 돌아가는 불칼을 두어 그 길을 지키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다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하나님게서 금하신 선악과를 범하여 죽게 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성경은 인류가 하늘에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영혼들로서 사망은 그 죄의 대가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18:4, 로마서 6:23)

 

생명과와 유월절 - 생명, 그 위대한 탄생

사람은 누구나 몸 속에 제 부모의 피가 흐릅니다.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 생명을 얻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바로 이런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피를 이어받도록 섭리하신 건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성력 1월 14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준비케 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지은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전야, 유언을 남기시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시며 행하신 건 제자들과 유월절을 함께하며 무언가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였는데,  유월절에는 먹는 떡이 당신의 살이 될 것이고,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가 당신의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찍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하신 말씀에 대한 이행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53)

에덴동산에서 먹으면 영생하는 열매가 생명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생명과의 실체인 것입니다.  생명과의 길을 막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당연히 그 길을 열어주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친히 오셔서 생명과를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생명과, 즉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새 언약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를 먹는 진리가 분명합니다.

 


안상홍님의 유월절 - 다시 열린 생명나무의 길

그런데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유월절이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생명과를 먹는 진리인 새 언약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고,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며 대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나무 열매의 실체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오래 저장하였던 포두주"란 오랫동안 포도주를 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자그마치 1600년 동안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유월절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때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 이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간절히 원했을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신 분.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길을 ,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새 언약의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오한계시록 2:7)

생명과의 실체 유월절을 찾아주신 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해도 우리을 구원하시기 우해서 이 땅에 두 번째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 이십니다.

2천년 전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배척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두 번재 임하신 안상홍님을 믿을 수 없다고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이든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하면 멸망 뿐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부인만 하지 마시고 진지하게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
Posted by 꿀~~단지
2020. 3. 16. 23:25

부부라는 이름으로 ..... 자유공간2020. 3. 16. 23:25

부부라는 이름으로 ....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이

가정 이라는 울타리 아래 하나가 되어 살게 됩니다.



 부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가정 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가끔은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했기에 너 아님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하게 된 부부도 있을 것이고,

 




아님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하나의 책임 의식에

가정을 일구어 살아가는 부부도 있을 겁니다.

 

부부란" 가장 가까운 듯해도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지요.

 

한 평생을 같이 하기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약을 했고,

그 많은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의 가정을 지켜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항상 처음 마음 같지 않은 것이 일상의 일들 이라면

부부간에 사랑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처음 같은 애틋함과 설렘은 흐려지기도 하겠지요.

 

어쩔 땐 서로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실수도 하게 되고

때로는 서로에게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을것이며

잠시 마음의 방황을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어느 누구 보다도 서로의 아픔을 잘 알면서도

쉽게 어루만져 주지 못하며 사는 것이

부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서로의 존재는

정" 이라는 의미로 변함없는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어 주지요.

 

부부라는 서로의 그 자리는 아름답게 소중한 하나의 의미로

잔잔하게 감싸 안아 주는 그윽한 향기로 다가 서기도 하구요.

 

부부란 가장 편한 사이인 만큼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장 조심스럽게 소중하게 가꾸어 가야 하는

하나의 귀하 의미라고 생각 되어 집니다.

 

부부란 정을 일구어  주는 하나의 큰 기둥일 것이며,

부부란 내가 사회 속에 나아가 생활 하는데

든든한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할 테니까요.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어떤 모습으로

하나의 그림자 같은 존재 일지도 모릅니다.


 
부부라는 하나의 이름은 부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서로를 조그만 더 존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부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서로를 조그만 더

상대의 입장에서 지켜보아 주었으면 합니다.


 
부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는 사랑이 아닌 지켜 봐 줄 수 있는

사랑의 부부였음 합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그 이름으로 언제 까지나

늘 곁에 머무르며 빛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부란 두 손과 같답니다.

왼손이 아프면 오른손이 어무만져 주고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이 어루만져 줍니다.



왼손이 가려우면 오른손이 긁어 주고

오른손이 가려우면 왼손이 긁어 줍니다.


오른손에 때가 묻으면 왼손이 닦아 주고

왼손에 때가 묻으면 오른손이 닦아 줍니다.

 

오른손에 무엇을 잡아 왼손으로 넘겨 주면

오른손으로 또 다른 것을 잡을 수 있습니다.

 

왼손이 밉다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때리면

왼손만 아픈게 아니라 오른손도 아픕니다.

 

오른손 밉다고 왼손이 때리면

오른손만 아픈게 아니라 왼손도 아픕니다.

 

손에는 부부의 길이 있습니다.

출처 : 부부라는 이름으로 ... 아름다운 글 중에서 

:
Posted by 꿀~~단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기독교는 점점 쇠퇴해져 가는반면 하나님의 교회는 날로 번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만도 단독 건물이 쉼없이 세워지고 있다. 

그래서 일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접 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  기독교회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기독 교회사가 곧 하나님의 교회 역사임을 2천 년 전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 

 

하나님의 교회 역사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때에 예수께서 ....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이시더니 (마가복음 1:1~10)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었다.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기독교는 신흥종교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다. 최후의 만찬을 하신 날로 알려진 "유월절" 이다.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유대인들은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수장인 예수가 죽었으니 당연히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의 희생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절으로 불타게 했고,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가속화하는 불씨가 됐다.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럴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다. 그전에는 가정 교회(House-church)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었다.

 

 

로마의 박해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다. 그전에는 가정 교회(House-church)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 기독교인들은 모라의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을 목적으로 여러 신들과 함께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었는데,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안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가정 교회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다.

 

 

로마의 탄압을 피해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다. 즉, 기독교의 역사가 곧? 하나님의 교회 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해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가타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다.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이다.

 

동아시와 교회와 로마교회의 분쟁

이 무렵 교회는 동아시아 교회와 로마교회의 분쟁으로 서서히 파벌이 생겼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였다.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됐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다. 두 지역 교회의 분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 성력 1월 14일 유월절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행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교회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도록 강요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들은 빅터의 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가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다. 이 기간에 로마교회의 교리는 급격하게 변질됐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68년 십자가상을 도입했다.

 

종교암흑기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 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이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0년에는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다. 참 진리를 전파하던 하나님의 교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로 유배시킬 때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 세상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다.


이와 함께 로마가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이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다.

 

 

종교개혁의 산물, 개신교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 가정에 한 아들이 태어났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테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테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서한을 내걸었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 다시 시작되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는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과 성도들이 몸담았던 초대교회, 즉 하나님의 교회가 안상홍님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가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지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교회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천 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 교회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2천년 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교회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교회를 만나고 싶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시기 전날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 되므로 기독교인들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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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
2020. 3. 8. 15:40

봅을 알리는 목련 꽃봉오리. 나만의 한컷2020. 3. 8. 15:40

봄을 알리는 목련 꽃봉오리.

추운 겨울~~~
세상이 얼어있고, 마음도 얼어있는 겨울..

겨울이 되면 봄을 기다리게 되죠.

목련 나무에 봄을 알리는 꽃봉오리가 피었네요.


꽃봉오리가 피었으니 꽃이 피는것도 금방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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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하나님의교회)

 

 

 

마지막 시대 성령시대......  성경에는 재림 예수님이 임하시는 시기에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들도 참 선지자처럼 가장하고 나오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우리는 누가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라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혹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  적그리스도는 거짓 선지자 **

거짓 선지자(false prophet)는 그리스도의 뜻을 올바로 전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Anti-christ), 거짓 교사, 거짓 사도라고도 일컫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거나 성경에 없는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심판과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24:11, 계20:10)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음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13: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경외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막 7:6~7)

 


**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  **

 

거짓 서지자는 겉으로 봐서는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빛의 처사로 가장하거나 선한 목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 11:14~15).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를 가리켜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마 7:15)


그렇다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말"로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즉, 말 속에서 거짓 선지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단7:25)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기록 외에 무엇을 덧붙이거나 빼버리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8~19)


몇 년 전, 한 개신교 목사와 얘기를 나누던 중 성경에 없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 목사는 "어떻게 사람이 성경대로 다 할 수 있느냐!" 며 성경의 가르침 외에 "더하는" 행위를 합리화 시켰습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안 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하고 되물었더니 당황스러운 닟빛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성경대로 다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뒤집어보면 "성경대로 안 해도 된다"라는 말을 교묘하게 꾸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성경을 왜곡하고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록된 가장 확실한 메뉴얼입니다. 목사의 말보다 성경을 더 신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만든 크리스마스 등의 사람의 계명 대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새 언약 유월절, 안식일 등 하나님의 절기를 지킬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있는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 참 선지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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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

 

하나님의 절기 안식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날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의 끝날인 제칠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셨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다. 사람들도 일년 365일을 다 특별한 날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그중 아주 특별한 날들만 기억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날로 정하신 날이 일곱째 날 안식일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일곱 요일 중 어떤 날에 해당할까.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이 일요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은 요일상 일요일이 아니라 ** 토요일 **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간상 겨우 하루 차이지만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판가름하고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1:13~15)

하나님의 절기 안식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날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이 요일상 "토요일"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성경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버전인 개역한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즉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에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시 뒤 ... "라고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고 후에 도입된 요일제도를 적용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켜 일요일이라고 하였으니, 그 전날인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이 되는 것이다.

달력을 보아도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일 순으로 이루어진 달력을 보면 첫째 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다. 국어사전에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토요일은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어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영어사전은 ‘한 주 즉, 7일의 주기는 일요일을 시작으로 하여 토요일에 끝난다(Week: a 7-day cycle beginning on Sunday and ending on Saturday)’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 주의 시작은 일요일이고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일요일은 일곱째 날이 아니라 ‘한 주의 첫날(sun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토요일은 ‘한 주의 일곱째 날(Saturday: the seventh day of the week)’이라고 되어 있다(Merriam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참고).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가톨릭에서도 인정한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라는 책에는 "안식일"은 쉬는 날이란 뜻인데,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쉬었던 마지막 날, 즉 토요일 입니다. 그래서 요즈음도 일력표에 보면 토요일이 주말로 되어 있습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카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또 다른 책 "억만 인의 신앙"에도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밝히고 있다. "안식일"이라는 말은 "쉰다"는 뜻이요, 주일의 일곱째 날 곧 토요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로 명시되어 있으니 성교 회로가 아니라 성서에서부터 직접 종교를 끌어 왔다고 우기는 가톨릭이 아닌 이들도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의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 요일상 토요일이다. 시대가 변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일은 바뀌지 않는다.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창세 때부터 일곱째 날이었고, 구약시대에도, 2천 년 전에도 일곱째 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곱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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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바울의 당부 머리수건 규례 (하나님의교회)

 

 

천주교 여 성도들이 머리수건을 쓰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드라마, 영화에서 간혹 볼때가 있었다.  머리수건을 쓰고 있는 모습이 경건해보이고, 왠지 한 번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개신교는 여 성도들은 머리수건을 쓰지 않는다. 천주교는 머리수건을 쓰는데 개신교는 왜 머리수건을 쓰지 않을까????  어디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있을까???

머리수건, 예배나 기도를 드릴 때 여 성도들이 머리에 쓰는 너울을 말한다. 머리수건 규례는 이천 년 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사도 바울이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전파했던 그리스도의 복음 중 하나이다.

 

 

**  머리수건 규례에 대해 - 사도 바울의 편지  **

 

머리수건, 여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때 반드시 갖춰야 하는 그리스도의 중요한 규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에게 머리수건 규례를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3)

55년경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 (고린도전서 1:11)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바울의 당부 머리수건 규례 (하나님의교회)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타락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고린도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리도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머리수건 규례에 대해 설명했다. 

 

 

**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바울의 당부 머리수건 규례 (하나님의교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저 11:1~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 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 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 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잇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 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 주케토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을 력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바우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여 성도는 반드시 머리수건을 써야 한다.   현재 하나님의 가리침대로 머리수건 규례를 행하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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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진짜 시온은 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오늘날 교회를 찾아보면 한 집 건너 한집이라고 표현을 해도 과하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하나님을 믿는다는 교회가 많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처로 친히 택하시고 그곳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그곳을 시온 이라고 한다.  과연 성경에서 증거하는 시온은 어떤 교회 일까????그

 

 



시온,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그곳을 자기 거처로 삼고자 말씀하셨다.  이곳은 내가 영원히 쉴 곳이니 내가 여기 머물 것은 이것을 원하였음이라 (현대인의성경 시편 132:13~14)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거주하며 집무, 외국사절 접견, 일상생활 등의 모든 일을 한다. 다름 아닌 백악관은 미국 대통령의주요 엄무지이자 공식 거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식 거처는 청와대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이 이곳에 거주했으며, 현재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여러 가지 나라 살림들을 돌본다.

흥미롭게 이 땅에는 하나님의 거처도 존재한다. BC 1055년경 시편 기자는 세상의 수많은 장소 중 "시온"을 콕 집어 "하나님의 집" 이라고 기록했다.  더불어 시온에서 힘이 되시고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시편 46,47,48편).

우리에게 친숙한 성경 속 여러 인물들 곧 미가, 스바냐, 예레미야 선지자 등은 "힐링의 장소"로 시온을 제시했다.  사람되어 임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위로를 받고, 평안과 마음의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미가 4:1~8, 스바냐 3:14, 예레미야 50:4~5)

이사야 선지자는 시온에 거하는 사람만이 "거룩한 백성"이라고 밝혔다.  시온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사야 4:1~4, 51:16).  이는 곧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가 같다.  이처럼 시온을 찾느냐 못 찾느냐는 구원을 결정할 만큼 매우 중대한 문제다.

 

 



시온은 어디인가

어느 시대에나 시온에 거하는 자들은 축복과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장받게 된다. 이 땅에서 시온만큼 든든하고 안전한 처소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교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시온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성경은 시온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으로 알려질 것이며 수많은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들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자 ... 그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는 그 진리대로 살 것이다 ...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성경 미가 4:1)


시온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장소다(이사야 33:20~22).  옛 율법 곧 옛 언약은 모세로 말미암아 "시내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9:20~25,  20:1~17).  중요한 것은 "시온산"에서 나온다는 율법과 언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 새언약 "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내산 같은 곳이 아닙니다 ···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그가 뿌리신 피 앞에 나아왔습니다. (새번역 히브리서 12:18~24)



사도 바울은 시내산(Sinai)과 시온산(Zion)을 대조하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음으로 다다른 곳은 새 언약의 진리가 있는 시온산이라고 설명했다. 새 언약이란 짐승의 피로 세운 옛 언약이 아닌,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언약을 가리킨다.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진 누가도 예수님의 피의 진리가 있는 곳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계신 장소 곧 시온이라고 밝혔다(사도행전 20:28).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비밀만 알면 세상의 수많은 교회 중 성경이 가리키는 ‘진짜’ 시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8~20)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포도주를 가리켜 당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란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 등의 제자들과 맺은 새 언약 유월절의 진리를 가리킨다. 오늘날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축복된 장소 시온인 것이다.

 

새 언약을 지키는 교회

국제선교통계보고서(IBMR)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는 기독교로, 약 73억 인구 중 약 24억 명이라고 한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기독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 수없이 난립된 교회 가운데 시온의 율법 곧 새 언약을 지키는 교회는 어디일까?




전 세계 언론, 유월절 지키는 교회로 ‘하나님의 교회’ 주목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18일 전 세계적으로 ‘유월절 대성회’를 거행했다. ···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 요한, 바울 등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켰던 새 언약 유월절은 오늘날 전 세계 하나님의 교회에서 유일하게 거행되고 있다.
(경기일보, 2019. 4. 21.)


하나님의 교회는 ···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 요한, 바울 등 사도들이 다녔던 초대 하나님의 교회 원형 그대로 새 언약을 소중히 지킨다. 175개국 7,000여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은 국적, 문화, 언어가 달라도 새 언약 진리, 다양한 봉사를 통한 선행 등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중앙신문, 2019. 1. 7.)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새 언약의 유월절(逾越節)을 지키고 있다. ··· 성경 누가복음 22장 15절에는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는 대목이 나온다.
(2019년 월간조선 매거진)


THE World Mission Society Church of God ··· The church commemorates the new covenant Passover, which returns every year, and carries out a love affair with various services such as blood donation campaign and environmental clean-up.
(SunStar DAVAO , 2018. 5. 31.)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발행하는 일간 신문인 데저레트 뉴스는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헌혈 캠페인을 통해 혈액을 기부함으로써 사회에 본이 된다고 게재했다. 이외에도 뉴욕의 미들 타운에서 발행하는 일간지, 필리핀의 데일리 인콰이어러, 미국 하와이 ABC 계열 텔레비전 방송국인 KITV4 채널,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일간신문, 우리나라의 서울신문, 중앙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기일보 등에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를 주목하며, 이 교회야말로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시온의 사명 "

세상에 난립된 교회들 중 시온의 사명을 감당하는 곳은 어디일까?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8~20)

시온을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곳에 육체로 임하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시온을 세워주신 예수님께서는 시온에 거하는 제자들에게 위대한 사명을 주시고 승천하셨다. 그것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이 3년동안 본보인 것을 끝까지 지키고,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것이다(마가복음 16:15).


이에 따라 사도 베드로와 요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시온의 율법을 지키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장소, 시온으로 인도했다. 시온은 예루살렘 지역뿐만 아니라 누가, 실라, 디모데, 안드로니고 등에 의해 고린도, 에베소, 데살로니가 지역에도 세워졌다(고린도후서 1:1~2, 데살로니가전서 1:1~10, 2:14). 특히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약 2,990km 떨어진 고린도 지역의 사람들에게 시온의 율법 곧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고린도전서 11:1, 23~26).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본보여주신 가장 애절하고도 간절한 당부이기 때문이다(누가복음 22:15, 19~20).


그렇다면 오늘날 시온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어디인가. 천주교인가. 아니면 여호와의증인, 통일교, 안식교, 침례교, 성결교, 장로교인가.

 

진짜 시온ㅇㄹ 찾아야 한다.  그곳에 당신을 의의길로, 평판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이 시온에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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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