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0번째 장자의 재앙에서 보호해 주시고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 받는 기적의 유월절을 최초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2:10)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장이 네게 가까이 못 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편 91:7~12
하나님께서 유월절 새 언약 진리 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주신 참으로 놀랍고 귀한 은혜의 약속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유월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김주철 총회장님의 설교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승천은 헬라어로 " 아나바이노 " 로서 " 올라가다 " 라는 뜻이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구별하여 육체를 입은 상태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희생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승천하셨다. 이 땅에서의 구원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다
성천에 관한 기록 - 엘리야와 에녹
구약시대 선지자 엘리야도 육체를 입은 상태에서 승천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가 되어 그는 길갈을 떠나야 했다. 그의 제자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 벧엘, 여리고, 요단강까지 동행했다 (열왕기하 2:1~7)
요단강을 건너 맞은편에 이르러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야길르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 그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열왕기하 2:8~11)
에녹도 승천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창세기 5장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셔서 세상에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승천 - 신약시대의 승천일
예수님의 승천 장면 묘사는 누가의 기록이 유일하다. 사도행전 1장에 그 역사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운명하셨다가 예언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당신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가르쳐주셨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은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현장은 예루살렘 인근에 있던 감람산(올리브산)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마지막 당부는 이랬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구름이 예수님을 가려 보이지 않게 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했다.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승천일의 의미
승천일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보이신 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기시 전 40일 동안 사도들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시며 천국복음을 가르치셨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교육을 통해 믿음을 곧추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증거했다.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는 진리책자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제 4장 ' 모세와 예수님 ' 을 통해 '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 는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다 ' 는 의미라고 가르쳐주셨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마가복음 16:19)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3:1)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이미 구약시대 모세의 행적에 암시되어 있었다. 유월절을 통해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에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안식일 이튿날 초실절로, 신약시대의 부활절)로부터 40일째 되는 날, 시내산 앞에 장막을 쳤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 (출애굽기 19:1~3). 이는 장차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실 것을 예표로써 보여주신 것이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로 성력 1월 15일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간 무교병, 즉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으며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기까지 겪었던 고난을 기념했다. 신약시대에는 무교절을 통해 어떠한 고난을 되새겨야 하는 것일까?
구약시대의 무교절
이집트에서의 해방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최초의 유월절을 지낸 한 밤중에 파라오로부터 이집트를 떠나라는 전갈을 받았다. 이집트 사람들은 여태까지 있었던 재앙들과 장자를 잃은 재장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히 내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빨리 나가기를 재촉하며 금은 패물까지 내어주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히 나오느리 미처 발효되지 않은 반죽을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길로 인도하셔서 바다와 만나게 하셨다. 한편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낸 후 마음이 돌변해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추격해 왔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오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이집트의 군대를 막아주시고 홍해를 갈라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같이 변한 홍해로 들어가자, 이집트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 위해 홍해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홍해를 건너 육지에 상륙했을 때, 홍해가 다시 합수회어 이집트 군대는 수장되고 말았다.
부교절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고난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절기다. 구약시대에는 7일 동안에 무교병, 즉 누룩(이스트)을 넣지 않은 떡을 먹으면서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상기하였다. 그래서 무교병을 " 고난의 떡 " 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을 지킴으로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고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권능을 기념하였던 것이다.
신약시대의 무교절
구약시대에 지킨 무교절이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라면 신약시대의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절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하셨다.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성경에서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며 운명하신 날, 즉 신랑을 빼앗긴 날은 유월절 다음 날인 무교절이다. 바로 성력 1월 15일이다. 그래서 새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한한 사랑으로 고난을 참으신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금식하며 예배를 드린다.
바울과 누가 일행은 마케도니아 지역인 빌립보에 있을 때 무교절을 맞이했다. '무교절 후에 떠났다'는 말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키고 떠났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라 " 고 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처럼 행사하지 않은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 이란 칭호를 받게 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실히 믿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순수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행사를 해야 한다. 신랑을 빼앗긴 날에는 금식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에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무교절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절기를 따라 절기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무교절은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지키던, 아주 소중한 그리스도의 율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