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96년경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놀라운 계시를 보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증거하신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요한계시록 1:1~2). 그 중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마지막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새 이름에 대핸 기록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돌 위에 기록된 새 이름은 유명한 목사나 신학자라고 해서 알 수 이쓴ㄴ 것이 아니다. 오직 성경의 예언을 믿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잇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다라 구원과 멸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요구된다. (요한복음 5:39).
사도 요한은 귀 있는 사람에게 성령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보라고 권했다. 귀 없는 사람을 들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요한이 말한 귀는 단순히 외이.중이.내이로 구별된 청각 기관이 아닌, 그리스도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잇는 귀를 가리킨 것이다.
외형상 멀쩡한 두 귀가 있고 청력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거나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 귀 없는 자 ' 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 할례받지 못한 귀 ' 라고도 표현했다. (예레미야 6:10~15).
그렇다면 새 이름이 기독된 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베드로전서 2:4~8)
흰 돌, 산 돌, 모둩이 돌, 부딪히는 돌, 머릿돌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비유한다. 결국 돌 위에 새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이름, 즉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두 번째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받는 자만 아는 새 이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 되어 이 당에 내려오신다고 예언했다. (이사야 7:14, 9:6~7). 약 700년 후 예언은 성취되었다. 어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라는 새 이름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등장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18~23).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믿노라 했던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참람한 말을 내뱉었고, 조롱하며 주먹으로 때리기가지 했다. 급기야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마태복음 26:65~68, 27:27~44).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3:28)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두 번재 나타나신다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구원자에 대한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등으로 인해 넘어지고 비방하고 배척할 것이다.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영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천 년 전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성경의 예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재림 예수림를 영접할 수 있으며, 새 이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구원자의 이름은 인류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위력이 있다. 성부시대 믿음의 선진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고, 성자시대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 성령시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재림 예수님의 새 이름이 인류의 구원자 죄 사함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교회라는 명칭은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를 비롯한 데모데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후서 1:1~2)
성경은 초대교회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왕래하던 교회의 이름을 하나님의교회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바울은 고리도(오늘날 그리스 중남부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의 행복과 안녕을 염려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빌어 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하나님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다니던 정통교회인 것이다.
하나님의교회를 증거한 사도 바울
유대교가 기득원을 쥐고 있던 시대,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던 사도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의교회에 소속되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 하나님의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엿습니다. 나는 ,,,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 (새번역 갈라디아서 1:13~14)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 구성된 초대교회를 거세게 핍박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최초 집사였던 스데반을 공개적으로 돌로 쳐 죽일 때 증인으로 서 있던 자가 바울이었다. 그는 스데반의 순교 직후 그리스도교의 잔멸을 계획하고 더욱 심한 핍박을 가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살기등등한 유대교의 위협을 피해 도피했고, 이들을 잡아내기 위해 다메섹(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으로 가던 바울은 하늘에서 환한 빛을 보고 시력을 잃었다. 기이한 체험에 놀라 정신을 잃은 그는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는 음성을 듣게 된다 (사도행전 9:1~5)
바울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여태껏 예수님을 증오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핍박했던 행동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즉시 그리스도교로 회심한다. 다메섹에서의 회심은 바리새인으로 살던 바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회심 이후 바울은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 고백했다.(디모데전서 1:15). 그리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1만km가 넘는 거리를 도보나 배로 이동하며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힘을 쏟았다.
눈여겨볼 점은 초대교회의 이름이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에 있을 때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들 즉 스데반, 베드로, 누가, 요한 등이 신앙하던 교회를 '하나님의교회'라고 언급했다. 또한 회심 이후 전도여행에 있던 그는 어떠한 훼방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굳게 하여 복음을 전파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발신대상은 다름아닌 데살로니가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다(데살로니가전서 1:~10, 2:14). 바울은 실라, 디모데, 안드로니고 등의 동역자들과 함께 고린도, 에베소, 데살로니가 지역 등에 하나님의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왔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믿으의 선진들이 소속된 교회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가 아닌 하나님의교회인 것이다.
하나님의교회의 핵심 진리
하나님의교회의 핵심 진리는 무엇일까.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 유월절을 예배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8~20)
성력 1월 14일 저녁, 예수님께서는 이 날을 기다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잡수셧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마태, 마가 등의 제자들에게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건네시며 당신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다.
일전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많은 무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사람의 살과 피를 마실 수 있겠느냐"며 배척했다. 반면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베드로는 예수님이야말로 인류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요한복음 6:51~69)
예수님게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따라다닌 유대인들과 달리, 말씀을 믿었던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셨다. 바로 닛산월 14일 저녁에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날 먹는 유월절의 떡은 십자가에 찢기실 예수님의 살을 찢기고 피 흘릴 것을 계획하시고, 대속의 공로를 인류에게 덧입을 수 있도록 유월절 새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마태복음 26:17~28).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따라다닌 유대인들과 달리, 말씀을 믿었던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셨다. 바로 닛산(Nisan)월 14일 저녁에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날 먹는 유월절의 떡은 십자가에 찢기실 예수님의 살을, 유월절의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인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살이 찢기고 피 흘릴 것을 계획하시고, 대속의 공로를 인류가 덧입을 수 있도록 유월절 새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마태복음 26:17~28).
예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곧 죄를 씻음 받는 길이라 여겼던 바울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자 유언인 유월절을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린도전서 11:23~26)
초대교회 시대, 예수님과 사도들이 지켰던 새 언약 유월절은 하나님의교회의 핵심 진리인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복자들이 있지만 당혹스럽게도 초대교회 즉 하나님의교회의 핵심 진리인 새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
대다수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교훈하시고 본보여 주신 안식일, 초막절 등은 폐지된 절기라 하고, 사람이 만든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은 정통이라 한다. 더욱이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가 있다면 율법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교회라고 말한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단의 교리로 치부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현재 목회자들의 모숩에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듯 하다.
초대교회의 원형 그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가 있다. 2018년 12월 31일자 월간조선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행적대로 새 언약의 진리를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라고 한다. 주간동아, 경인일보 등 유수 언론에서도 성경대로 새 언약을 지키는 곳은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고 보도했다.
하나님의교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는 "하나님의교회는 세간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정로를 걸어왔다"며 "인류에게 구원의 진리인 새 언약 복음으로 행복과 평화를 전하고,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 이라고 밝혔다. 초대교회 시대 숱한 고난을 극복하며 새 언약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행적과 일맥상통한다.
예수님의 정신이 살아있고 예수님의 진리가 살아 숨쉬는 교회를 찾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이 지금 서울에 온다면 성경에 없는 일요일 예베를 지키는 교회에 갈까, 아니면 "유월절 지키길 원하고 원하였노라"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래도 행하는 교회에 갈까. 심각히 생각해봐야 할 거이다.
예수님의 정신이 살아있고 예수님의 진리가 살아 숨쉬는 교회를 찾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이 지금 서울에 온다면 성경에 없는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교회에 갈까, 아니면 “유월절 지키길 원하고 원하였노라”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하는 교회에 갈까. 심각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섯 명의 눈먼 과학자들은 그들을 가리고 있던 커다란 그림자가 '무엇이냐'는 진실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중심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판단했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었다.
심지어 서커스 단장이 그들이 찾고 있던 진실 즉 ' 코끼리 ' 라는 정답을 알려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맹목적으로 고집하여 진실을 찾지 못한 동화 속 눈먼 과학자들의 모습은, 현대 기독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의 양대산맥이라 하는 개신교와 가콜릭에 두루 퍼진 비성경적인 계명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을 조명해 볼 수 있다.
과거 종교 지도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 당신의 제자들은 왜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온 전통을 깨뜨리고 있습니까? 그들은 식사할 때 손을 씻지 않습니다. ' 하였다. ....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왜 너희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 위선자들아 ...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 ...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이다. (현대인의성경 마태복음 15:1~14)
문헌 등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지배층에 속한 바리새인들은 구전율법 즉 고명한 랍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생활규범을 중시했다.
가령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을 것, 사람이 많은 저잣거리에서 돌아왔을 때 반드시 몸을 씨고 식사할 것, 자주 금식 할 것 등이다. (마태복음 9:14, 마가복음 7:1~4)
특히 그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 자체를 죄악이라 여기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적이 없는 전통들을 만들어냈다.
이외에도 농사에 관련된 ' 제라임 ', 여성과 관련된 ' 나쉼 '. 손해배상과 관련된 ' 내지킨 ', 성전과 관련된 ' 코다쉽 ' 등 수많은 구전율법이 있었다.
이 같은 구전율법을 습득한 랍비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
때문에 교사를 담당했던 랍비들마다 서로 해설을 달리하여 밳ㅇ을 가르치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 즉 사람이 만든 유전을 전파하는데 골몰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보다 구원과 관계없는 사람의 계명에 얽매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을 예수님께서 꼬집으시며 그들을 가리켜 ' 눈먼 인도자 ' 라고 지적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유전에 도전하는 예수님을 위험인물로 보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
오늘날 공교롭게도 ‘눈먼 인도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종교 지도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인 것처럼 가르친다.
대표적으로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예배 등이다.
수많은 공중파 방송과 서적, 언론, 교회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는 고대 로마의 이교도들이 지키던 동짓날을 로마교회가 예수님의 탄생일로 채택한 데서 비롯됐다.
미국 시카고 신학대학교의 한 명예이사는 “12월 25일은 태양신 종교를 기독교로 흡수시키기 위해 예수의 생일과 태양신 미트라의 생일을 일치시켰다”고 밝혔다.
일요일 예배는 321년 3월 7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을 공식적인 국가 공휴일로 선포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로마가톨릭은 더 많은 이교도들을 교회에 끌어모을 수 있다는 명분으로 성경의 예배일인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일요일 예배가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가톨릭 교회의 권위로 바탕을 둔 것”이라고 명시한 교회사에 잘 나타난다.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예배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도, 성경에서 기원한 것도 아니다. 구원과 관계없는 사람의 계명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와 가톨릭 지도자들은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눈엣가시 같은 것으로 여긴다. 과거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놀랍게 일치한다.
아이러니한 신자들의 반응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태복음 15:13~14)
2천 년 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새 언약의 안식일, 유월절, 초막절 등의 계명들을 심으셨다(누가복음 4:16, 마태복음 26:17, 요한복음 7:2).
사도들도 예수님의 행적에 따라 하나님의 계명들을 소중히 지켰다(사도행전 17:2, 고린도전서 11:23~26).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성경 속 진실 앞에서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서 심으신 계명을 거부하고 사람이 심은 계명을 맹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자부하며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마치 동화 『다섯 명의 과학자와 코끼리』에 나오는 눈먼 과학자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을 가르치고 지키는 사람들을 ‘소경’이라고 판단하시고 결국 다같이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2)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진짜로 안 믿는 것이 문제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하는 믿음이 기독교에 시급하다.
사람이 만든 교리에 치우쳐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진리를 ' 폐지된 율법 ' 혹은 ' 눈엣가시 '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만큼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